청청 말씀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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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에 광야에서(마 3:1-12)
머리 둘 곳 없는 그리스도요셉과 마리아는 갓 태어난 아기를 안고 기뻐했습니다. 예기치 않았던 손님인 동방의 박사들이 찾아와 진귀한 보물을 주고 축복의 말을 전해 주기도 했습니다. 작고 가난한 가족이었으나,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이제 막 육신의 옷을 입은 아기 예수님 주변에는 따듯한 온기가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이 작은 가족을 둘러싼 정치적 현실은 차갑기가 그지없었습니다. 아기 예수를 품에 안은 두 부부가 가장 먼저 들어야 했던 계시는 "헤롯이 아기를 찾아서 죽이려고 하니, 일어나서,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라."는 간담을 서늘케하는 천사의 메시지였습니다(마 2:13). 헤롯이라는 유대 최고 권력자로부터의 살해 위협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몸도 풀리지 않은 아내와 제 목도 가누지 못하..
2025.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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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를 간직한 사람(마 24:36-44)
편견과 확신국내 논픽션 번역가 가운데 '김명남' 번역가가 계십니다. 주로 과학 분야 서적을 번역하시는데, 출판계에서는 이 분야에서 가장 탁월한 번역가로 손꼽는 분입니다. 저도 몇 권 갖고 있는데요. 잘 모르는 분야의 책인데, 번역가가 김명남이면 일단 믿고 볼 수 있는 정도입니다. 지난주에 번역가 김명남의 인터뷰라는 제목의 영상이 있어서 클릭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매우 놀랐습니다. 김명남 번역가가 당연히 남성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화면에 나오신 번역가는 여성이었습니다. 제 착각의 변을 하자면, 그의 이름이 김명남, 누가 들어도 남성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솔직한 말씀을 드리자면, 과학이라는 분야, 논픽션이라는 특징, 탁월성을 인정받은 업계 제일이라는 평가가 저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그를 남..
2025.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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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낮으신(눅 23:33-43)
두 청년의 집며칠 전 20대 초반 어느 아이돌 가수가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한 주택을 매수했는데, 그 가격이 137억이고 이를 모두 현찰로 매입했다는 기사가 포털을 가득 메웠던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대단했습니다. 그 집이 어디에 있으며, 같은 단지에 유명 연예인 아무개가 살고 있다든지, 또는 최근 수년 동안 집의 가치가 얼마나 올랐는지 등 다양한 후속기사가 쏟아졌습니다.비슷한 시기에 제 지인께서 운영하고 있는 한 독립 출판사에서 여러 사람의 인터뷰를 모아 기록한 책이 출판되었습니다. 인터뷰이들은 20에서 30대 청년들과 이제 막 가족을 이루는 젊은 부부들이 주를 이루었고, 이들 모두는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이었습니다. 책의 제목은 , 참 얄궂게 잘 지었지요. 인터뷰이 가운데 92년생 박혜빈 ..
2025.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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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의 징조(눅 21:5-19)
하나님 없는 하나님의 성전누가복음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사역은 성전 안에서 이뤄집니다. 주님은 성전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가셨습니다. 성전에서의 첫 장면을 기억하시지요. 주님은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이들을 내쫓으시며, 너희들이 내 아버지의 집이며 만일을 위해 기도하는 공간이 되어야 할 하나님의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고 꾸짖습니다. 이 사건은 평온했던 성전의 일상을 뒤흔들었고, 무엇보다 성전에서 경제적 이득과 정치적 혜택을 누리던 사람들을 분노하게 했습니다. 이후로도 주님은 성전에 머무시며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여러 차례 논쟁하시고 그들의 위선을 폭로하셨습니다. 특히, 가진 재산이라곤 렙돈 두 닢이 다였던 가난한 과부가 그 돈 전부를 성전 헌금함에 넣는 것을 보..
2025.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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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소리를 듣기 위하여(욥 19:24-27a)
아픔을 말한다는 것의 버거움밤낮의 기온차가 커지는 계절이 되면 으레 한 번씩 몸살감기에 걸리곤 하는데, 올해에도 어김없었습니다. 이틀 정도는 참았는데, 안 되겠다 싶어서 내과를 찾았습니다. 대기실에 있다가 차례가 되어 의사 앞으로 불려 가 앉았습니다. 의사가 묻습니다. 어디가 불편해서 왔느냐고. 이때 저에게는 언제나 수수께끼 같은 일이 벌어지곤 합니다. 분명 몸 여기저기가 쑤시고 아픈데, 그 아픔의 감각은 분명한 현실이고 실존인데, 이상하게도 의사 앞에만 서면 그 아픈 것들을 온전한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지요. 두통이 있느냐는 말에, 머리가 아프긴 한데 아주 많이 아픈 것 같지는 않기도 하고. 낮에는 괜찮은데 저녁이 되면 또다시 아픈 것 같기도 하고요. 몸이 어떻게 아프냐는 질문에는 답하기가 더욱..
2025.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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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죄인이라는 고백에 관하여(렘 14:7-10, 19-22), 종교개혁주일
가뭄의 책임지난여름 강원도 강릉시는 사상 유례없는 가뭄을 겪었습니다. 보도로는 강원 일대의 강수량이 연평균 661mm인데 올해에는 무려 189mm, 평년 대비 28% 수준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비가 오지 않으니 강릉 지역 저수율은 100%를 기준으로 15%까지 떨어져 버렸습니다. 물 부족이 극단에 다다르자, 농업과 공업용수는 일찌감치 제한되거나 중단되었고, 급기야 생활용수까지 제한 급수가 시작되었습니다. 수도꼭지를 돌리면 물이 나온다는 사실이 당연한 이치가 아님을 우리는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물을 온전히 쓸 수 없게 되자 시민들의 삶의 질은 급격하게 떨어지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기상 관측 이래 108년 만의 기록적 가뭄의 이유와 원인을 찾기 위해..
2025.10.26
우리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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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10월 13일 예배 공동기도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여러 가지 마음의 모양을 갖고 여기에 모였습니다. 무탈하게 보낸 이도 있고, 걱정으로 밤을 지새운 이도 있습니다. 주님, 예배드리는 이 자리에서만큼은 분주한 마음을 내려놓고 당신의 음성과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해 주십시오. 주님은 밝은 귀를 갖고 계셔서 우리의 작은 목소리도 들으시는 분임을 잊지 말게 해 주십시오. 주님, 지난 며칠 우리는 멀리 유럽에서 들려온 기쁜 소식에 설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말로 쓰인 우리의 슬픈 역사가 보편성을 갖추고 세계적 공감을 줄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쏟아지는 찬사 속에서도 오늘도 전쟁으로 죽어가는 이들이 있기에 축하의 말을 할 수 없다는 그 작가의 말을 가슴 속에 오래 새겨두어야 하겠습니다. 주님, 슬픔에 공감하고 아픔을 보듬을 수 있는 감..
2024.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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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10월 6일 공동기도
창조주이신 하나님, 하늘이 얼마나 맑고 높은지 주님 생각이 절로 나는 요즘입니다. 온 세상은 창조의 섭리를 따라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는데, 우리 마음은 자꾸만 그늘이 드리웁니다. 세상의 속도에 발을 맞추지 못한 것 같아 불안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일그러집니다. 주님, 세상이 우리를 지나쳐가도 내 옆에는 언제나 주게서 나의 속도에 맞춰 함께 걸어가고 있음을 바라보게 해 주십시오. 주님과 함께 걷는다면 세상의 속도 따위는 두렵지 않습니다. 평화이신 주님, 중동의 형제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적의를 가득 담은 미사일이 집과 학교, 병원과 교회를 가릴 것 없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포탄에 땅이 패일 때, 우리 주님의 마음도 갈라지고 패입니다. 보복과 복수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함을 깨닫게 해 주십시오. 주께서 개..
2024.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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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2일 예배 기도
하나님,오늘도 이곳에 함께 모여 예배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지난 추석에는 가족, 친척들과 모여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이렇게나 더운 추석은 처음이라며, 눈앞에 다가온 기후위기를 모두가 체감했습니다. 앞으로의 추석도 이렇게 계속 더워지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습니다. 피부로 느껴지는 기후 변화에 무력감을 느낍니다. 주님 우리와 함께해주세요. 친척들과 헤어지면서 요즘 같은 때에 아프지 말고 건강하자는 인사를 건네며 헤어졌습니다. 하루 빨리 의료시스템이 정상화 되길 바라지만, 정부와 전공의들간의 갈등은 해소될 것 같지 않습니다. 일부의 전공의는 응급실에 남아 진료를 하는 의사들을 부역자라 부르며 블랙리스트를 공개하는가 하면, 정부는 작성자를 색출해 구속하는 행태도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누군가 패배해야 끝이나..
2024.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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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8월 25일 예배 기도
주님! 우리는 성령 강림 후 연중 시기의 중간에 와 있습니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닮은 이 시기에 우리의 일상이 작은 신비로 풍성하기를 바라지만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진부하고 악한 소식과 우리에게 닥쳐오는 비극적인 사건들, 희망을 품기 어려운 반복적인 삶의 지속 가운데 우리의 삶은 쉽게 납작해집니다. 마치 뜨거운 날 홀로 우물 앞에 선 사마리아 여인처럼, 우리는 주님 앞에 간신히 서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말을 걸어오실 때, 우리가 상상치 못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 우리의 납작했던 기도의 언어는 변혁되고, 예기치 못한 기쁨에 휩싸이며, 우리의 시선은 곁에 있는 공동체를 향하게 되고, 그 공동체가 함께 쌓아올렸던 것이 아름다운 형상으로 나타남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예배와 ..
2024.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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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7월 28일 예배 기도
하나님 아버지,오늘 이 시간, 저희가 주님의 앞에 나아와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하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사랑과 은혜로 오늘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하며, 이 시간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온전히 주님께 드리기를 원합니다.주님, 오늘날 우리는 무더위와 장마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 계절의 극심한 날씨 가운데서도 주님의 평안과 위로를 찾기를 원합니다. 무더위로 인해 지치고 힘든 이들에게 주님의 시원한 은혜를 내려주시고, 장마로 인한 피해와 불편 속에서도 주님의 보호와 도움을 경험하게 해주세요.하나님, 우리가 이러한 환경에서, 이웃과 함께 상생할 수 있는 지혜와 인내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이 계절이 우리에게 힘과 위로가 되게 하시고, 이 어려움을..
2024.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