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청청의 이야기89

룻다, 욥바, 가이사랴를 지나 예루살렘에서(행 11:1~18) 우울한 출발사도 베드로가 룻다, 욥바, 가이사랴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자신의 본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로 돌아오는 장면으로 오늘 사도행전 말씀이 시작됩니다. 잠시 베드로의 여정을 되짚어 보겠습니다. 베드로가 룻다로 가기 전 말씀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사도행전 9장 32절입니다. 9:32 베드로는 사방을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내려가서, 거기에 사는 성도들도 방문하였다.사방을 두루 다녔다는 표현은 그가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분주하게 움직였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딱히 갈 곳이 없어 이곳저곳을 목적 없이 돌아다녔음에 더 가깝습니다. 이상하지요. 초대 교회의 지도자이자 사도 가운데 대표인 그가 갈 곳이 없어 여기저기 사방으로 다녔다니 말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상황이 녹록지 않았기 때문.. 2025. 5. 18.
2025년 5월 18일(부활절 다섯째 주일) 2025. 5. 17.
신에게서 시선을 돌려야 할 때: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어떤 죽음은 설명될 수 없습니다. 아니, 설명할 수 있는 죽음은 거의 없습니다. 고령의 노인이 숙환으로 별세한다고 그의 죽음을 반듯하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왜 지금인가, 어째서 오늘일까, 조금 더 계실 수는 없었나 하는 부질없는 물음이 뒤따라오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참사라는 이름의 죽음들은 더더욱 설명될 수 없고 설명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4월 그날, 아이들은 왜 그 배에 올랐고, 배를 띄운 바다는 어째서 그 배를 삼켰는지, 아이들은 왜 부모 품으로 돌아올 수 없었는지, 우리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평소와 같이 아침을 먹고 신발 끈을 묶고 현관문을 열고 일터로 나간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들이 어째서 같은 날 저녁, 아침에 열고 나간 문을 다시 열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는지, 그들이 어째서 죽음으.. 2025. 5. 14.
다비다라는 여제자(행 9:36-43), 부활절 넷째 주 공동체의 덕목공동체의 건강함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있다면, 그 공동체 안에서 가장 약한 사람, 가장 어린 사람, 가장 바깥에 있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가장 느리게 오는 사람을 넉넉히 기다릴 줄 안다면 그 공동체는 건강한 공동체입니다. 보폭을 맞출 수 없으면 따로 오든가 아예 오지 말라고 한다면 효율적인 공동체일 수는 있으나 건강한 공동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한 사회, 나아가 국가의 건강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회에서 가장 약한 사람들, 배제된 사람들, 바깥으로 내몰린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면 그 사회와 국가의 건강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국방력, 경제력, 무역수지, 종합주가지수 따위를 건강함의 척도로 여기지만, 믿음의 공동체는 그와 달라야 합니다. 뒤처진 사람을 기다릴 줄 알.. 2025. 5.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