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56 그 도성을 보시고 우시었다(눅 19:28-41), 종려주일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다누가복음서의 전체 서사를 펼쳐놓고 보면,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주님의 여정이라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갈릴리에서 세례받으시고 제자들을 부르시고 이곳저곳을 다니시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고, 가난하고 병든 이들의 손을 잡아 주셨으며 놀라운 기적을 베푸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렇게 갈릴리를 두루 다니신 후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기 직전 주님의 마지막 거처는 바로 죄인 취급 받던 삭개오의 집이었습니다. 주님은 부끄러워 자기 얼굴을 가린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시고 그가 구원받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말씀하셨습니다(눅 19:9). 이후로 주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셔서 무덤에 안치되기까지 거처가 없으셨고 한 번도 평안히 눕지 못하셨습니다. 주님에게 마지막 위로와 힘을 공급한 집과 그 집의 주인이 삭개오라.. 2025. 4. 13. 식탁의 평화가 깨질 때(요 12:1-8), 사순절 다섯째 주일 새 일의 시작우리는 지난 금요일부터 역사적인 순간순간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3일 그날 밤 이래로 오늘까지 우리는 매 순간 역사적 시간, 카이로스의 때를 지나고 있습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너무 많이 싸우고 갈등했습니다. 불필요한 다툼이 벌어졌고, 폭력 사태가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기도 했습니다. 서로의 말은 거칠어졌고 내 편이 아니면 적으로 간주했고, 적으로 삼은 이는 곧바로 악이 되어버렸습니다. 지금부터의 시간은 책임의 시간입니다. 우리 청년들의 몫이 작지 않습니다. 분열과 갈등을 만들어내는 파괴적인 메시지는 오늘도 울려 퍼질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과 화해의 메시지로 저 어둠의 메시지를 삼켜버려야 합니다. 언젠가도 말씀드렸듯 세상의 악함이 우리의 의로움을 보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 2025. 4. 6. 있지만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눅 15:1~3, 11b~32) 있지만 없는 사람들예수님 곁에는 언제나 죄인들, 세리들, 당대의 거리끼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주님은 멸시와 천대에 익숙한 사람들을 넉넉하게 받아들이셨고 그들과 먹고 이야기 나누시고 즐거워하길 마다치 않으셨습니다. 누가복음은 오늘 말씀을 시작하며 이른바 의롭다 일컫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 학자들이 투덜거렸다고 말합니다. 죄인들과 가까이하는 저 예수라는 자가 무엇보다 싫었지만, 그들의 심사를 더욱 꼬이게 만든 것은 죄인들의 태도였습니다. 죄인들이란 자고로 자기 죄를 인정하고 부끄러움을 얼굴에 보이며 무엇보다 없는 듯 지내야 하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이들이 주님만 만나면 얼굴에 꽃이 피고 웃음이 가득하고 목소리를 높입니다.경건한 유대인들은 죄인들을 보거나 만지는 것만으로도 죄가 옮겨붙는다고 생각했습니다.. 2025. 3. 30.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눅 13:31-35), 사순절 둘째 주일 정론직필(正論直筆)언론의 정신과 철학을 말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표현이 '정론·직필'입니다. 말, 사실, 사태 등을 곡해하지 않고 바르고 정확히 쓴다는 뜻입니다. 정론직필은 언론의 사명이고 가치입니다. 기자를 비롯해 언론 기관에서 종사하는 분들은 예외 없이 정론직필의 마음과 자세로 일하리라 저는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정론직필이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 일은 아닙니다.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권력은 바르고 옳은 말을 하는 이들을 싫어했습니다. 서슬 퍼런 권력의 칼이 춤을 추던 군부독재 시절 언론은 기사 한 편 쓰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습니다. 부패한 당대 권력을 정조준한 기사나 칼럼이 실리면 당시 정부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기자를 겁박하고 신문을 폐간시키기까지 했습니다. 정론을 직필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2025. 3. 16. 이전 1 ··· 6 7 8 9 10 11 12 ··· 1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