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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청 말씀 나눔83

주님을 처음 뵌 날(요 1:29-34), 주현 후 둘째 주일 세례 요한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곁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29) 이 말씀은 사복음서에서 요한복음에만 등장하는 특별한 기록입니다. 공관복음이라 부르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는 요한의 이 고백이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공관복음은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 주는 모습이 마치 실시간 영화처럼 묘사됩니다(예수께서 나오신다, 물에 들어가신다, 물에서 나오신다, 성령이 내린다, 하늘에서 음성이 들린다). 반면 요한복음에는 주님이 세례받으시는 장면이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습니다.어째서 이런 차이가 발생할까요? 시점에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는 현재 상황을 주목하지만, 요한복.. 2026. 1. 18.
소리의 끝(마 3:13-17), 주현 후 첫째 주일 큰 소리들정향(定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어로는 orienting인데요. 사전을 보면 방향을 정함, 또는 일정한 방향성을 가짐이라는 뜻입니다. 행동심리학에서는 새로운 정보가 나타날 때, 본능적으로 그곳에 주의를 돌리는 반응을 '정향 반응(Orienting Response)'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사실 거의 매일 이 '정향 반응'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길을 쾅 하는 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그 소리가 난 방향을 쳐다봅니다. 이게 정향 반응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혹은 익숙한 내 방에 앉아 있는데, 평소에 들리지 않던 소리가 거실에서 나면, 선득함을 느끼고 긴장하면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행동도 정향 반응입니다. 정향 반응은 낯선 소리를 위험으로 감지하고 그곳을 향해 즉각 바라.. 2026. 1. 12.
땅의 맨 끝에서(렘 31:7-14), 성탄 후 둘째 주일 시간의 매듭새해 첫 번째 주일을 맞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난해를 반성하고 새해 계획과 다짐을 세우며 마음을 다잡는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12월 31일과 1월 1일은 그저 하루가 지고 또 하루가 시작되는 무미건조한 시간의 전환이며 인간이 편의를 위해 고안한 달력상의 구분일 뿐인데 왜 그리 호들갑이냐고 무안을 주기도 합니다. 지당한 말씀이지만, 인간 이해의 깊이가 얕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분명 12월 31일과 1월 1일 사이의 시간에는 어떤 물리적인 차이가 없습니다. 시간은 무심히 흐를 뿐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일상적 시간의 흐름 사이를 갈라낸 후에 그 안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어째서일까요? 인간이 동물과 다른 여러 이유 가운데 한 가지, 곧 의례를 행하는 존재이기 때문입.. 2026. 1. 5.
거룩한 무죄자들(Holy Innocents)(마 2:12-23) 성탄 후 첫 날성탄절을 기념하는 온갖 장식은 신기한 데가 있어서, 25일을 기점으로 하루만 지나도 그 있음이 어색해지기 시작합니다. 거리마다 흘러나오던 성탄 캐럴은 중단되어 더는 들리지 않고, 보기만 해도 마음이 명랑해지던 멋진 트리와 형형색색 장식물들은 이제 철거 일정을 기다리는 신세가 됩니다. 불과 하루만에 존재만으로도 마음을 설레게 만들어 주던 것들이 이제는 서둘러 처분하고 싶어지는 어색한 장식품이라는 운명이 되어버립니다. 현대인들에게 성탄은 도래와 동시에 망각으로 돌입하는 찰나의 기쁨인 듯 합니다. 가혹한 평가인가 싶지만, 마태복음서가 이야기하는 성탄 그다음 날이 그러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서 2장 13절의 첫 마디가 이렇게 시작하지요. "박사들이 돌아간 뒤에" 동방의 박사들은 하늘에 .. 2025. 1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