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청청 말씀 나눔31

한가운데를 지나서(눅 4:21-30) 벼랑 끝에 선 교회오늘은 우리가 마주한 본문의 맨 마지막 장면, 벼랑 끝에 서신 주님을 바라보며 시작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산 꼭대기에 섰습니다. 산천을 감상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주님은 잡혀 왔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을 크게 분노하게 만드셨고, 이성을 잃은 이들이 주님을 잡아다가 산 아래로 떨어뜨리기 위해 벼랑 끝으로 끌고 간 것입니다.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길래 사람들이 이렇게 폭발한 것일까요? 우리가 살피고 있는 누가복음 4장은 주님 사역의 첫 장면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주님은 당신의 사역 첫 페이지부터 사람들 뒤흔들어 놓으셨을까요? 사역의 초입이니 부드럽게 시작하실 만도 한데 주님의 사전에는 '적당히'가 없었습니다. 뜸을 들이거나 예열 없이 언제나 직격으로 사람들의 굳은 마음을 헤집고 세상의 부조.. 2025. 2. 2.
버려두지 않기로 합시다(요 2:1-11), 주현 후 둘째 주 '나락'이라는 유행최근 저는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거나 콘텐츠를 살필 때 의도적으로 멀리하는 것, 눈여겨보지 않으려는 것, 듣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른바 나락 콘텐츠라고 하지요. 주로 연예인이나 인기 있는 인플루언서들이 말이나 행동에서 실수하거나 잘못을 한 경우 혹은 과거에 그들이 저지른 어떤 비행이 드러난 경우 그들을 희화화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저는 이런 유의 기사나 '밈'이라 부르는 소셜미디어 콘텐츠를 가급적 피하려고 애씁니다. 제가 도덕적으로 높은 수준의 사람이라서가 아닙니다. 그들의 비위를 두둔하기 위함 역시 물론 아닙니다. 누군가의 실수나 과오를 유희거리로 만들어 조리돌리는 행위가 당사자의 인격을 파괴하고 사회적으로 복구 불가능으로 만들며 무엇보다 회복 가능성을 차단하기 때문.. 2025. 1. 19.
기대의 방향 (눅 3:15-17, 21-22), 주현 후 첫째 주일 벅찬 기대유대의 많은 사람들이 광야로 나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습니다. 요한은 단지 세례만 베풀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몇 주 전에 살펴보았듯 그는 서릿발 같은 가르침으로 세례받으러 나온 사람들의 굳은 마음을 부수었습니다. 서슴지 않고 독사의 자식이라 다그쳤고 닥쳐올 진노를 피할 생각 하지 말라고 엄히 경고했습니다. 자랑스럽게 여겼던 유대 혈통도 당신들을 구원할 수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조금 민망합니다. 사람들 입장에서는 도시를 떠나 광야로 나가 세례를 받는 일만으로도 벅찬 결단일 텐데, 생면부지의 예언자에게 질책과 훈계를 듣는다는 일이 선뜻 이해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광야에 모인 사람들은 놀랍게도 요한의 예언자적 음성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요한의 진심이 닿았기 때문에 .. 2025. 1. 12.
어둠보다 한 발 앞서, 성탄 후 둘째 주(250105) 빛은 왔으나제 아들 지원이는 보통 아침 일곱 시에서 일곱 시 반 무렵 일어납니다. 전날 늦게까지 논 날은 여덟 시에도 일어나긴 하는데, 거의 같은 시간에 일어납니다. 우리 어른들은 잠에서 깨어 아침 시간을 가늠할 때 스마트폰이 보여주는 숫자로 파악하지요. 반쯤 눈을 떠서 시간을 보고 조금 더 자야겠다거나 혹은 일어나야 할 시간을 놓쳐서 화들짝 급한 마음에 아침을 서두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 아들은 아직 시계를 볼 줄 모르기 때문에 아침 시간을 숫자로 인지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여섯 시에 눈을 떴다고 조금 더 자야겠다고 생각하거나, 여덟 시에 눈을 뜨고는 오늘은 늦잠을 잤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제 아들이 아침임을 깨닫는 유일한 기준이 있다면, 바로 창밖에 해가 떴느냐 아니냐입니다.아침에 눈을 떴는데 창 .. 2025. 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