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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청 말씀 나눔

복 있는 사람 도감(눅 6:17-26), 주현 후 여섯째 주일

by 청파비둘기 2025. 2. 16.

<좋은 사람 도감>
그다지 할 일이 없을 때 저는 인터넷 서점, 주로 교보문고나 알라딘, 혹은 예스24를 뒤적이곤 하는데요. 이런저런 페이지를 넘나들다 보면 흥미로운 책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지난주에 재밌는 책을 발견했고 바로 사서 봤습니다. 친근한 일러스트와 재미있는 제목으로 소개된 책인데요. '‘엔타쿠entaku'라고 하는 일본의 크리에이티브 팀이 그리고 쓴 도감집인데, 제목은 <좋은 사람 도감>입니다. 지금 보여드리는 이 책입니다.

 

<좋은 사람 도감> (묘엔 스구루,사사키 히나,마나코 지에미 씀, 이지수 역, 서교책방, 2025)



이 책은 "일상생활 속에 숨어 있는 ‘100명의 좋은 사람’을 발견하여 수집한 도감"이라는 소제목이 붙어있습니다. 제목과 책 소개 그대로 우리가 살면서 한두 번쯤은 만나보았을 법한 좋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와 삽화를 담고 있습니다. 제가 몇 명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갈 수 있으면 갈게라고 말하고 진짜 가는 사람

어디서 산 건지 물어봤을 때 제품 링크까지 보내주는 사람

시험지를 돌릴 때 뒤로 돌아보고 주는 사람

회사에서 말을 걸거나 질문할 때 키보드에서 손을 때는 사람

줌 회의 시작할 때 일단 카메라를 켜주는 사람

누군가 남의 흉을 보기 시작했을 때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리는 사람

어떠세요? 저도 여기에 소개된 좋은 사람을 몇 번은 만난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그러리라 믿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어떠신가요? 마음이 따듯해지고 위로가 되고 명랑한 기분이 듭니다. 친절과 좋음에는 생각보다 강한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을 기획한 크리에이티브팀 '엔타쿠'는 또 이런 말도 했습니다.

자기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나요? 저는 이전까지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전시회를 기획하며 '좋은 사람의 행동'을 잔뜩 수집하다 보니, '나도 이런 행동이라면 하는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사람을 발견하면 자기 자신의 좋은 부분에도 눈을 떠서, 자신이 조금 더 좋아집니다. 또한 본인이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멋진 표현이죠. 좋은 사람을 발견할 때, 바로 자기 자신에게도 좋은 부분이 있음에 눈을 뜨게 된다는 말 말입니다. 이렇게 좋음을 주고받을 때 우리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좋은 사람'이 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말은 참 오래 기억해야 할 말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무정한 사회입니다. 말을 가려 하지 않습니다. 착하고 좋음을 무능하고 나약한 것으로 치부하는 냉혈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실수나 실패는 용납되지 못하며 약점이 드러나는 순간 조리돌림을 각오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특히나 사회적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요즘은 사람을 만나고 대하는 일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내 앞에 선 이 분이 혹시 나와 생각이 다르면 어쩌지?' 하는 불안을 품게 되었습니다. 슬픈 일이지요. 대화는 수세적으로 바뀌고 거리를 두는 일이 편해졌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친절과 온기가 시들어갑니다. 관계가 이처럼 퍼석이는 때에 여기 <좋은 사람 도감>에 나오는 사람을 만난다면 우리는 그야말로 사막에서 샘물을 만난 기분일 것입니다.


나무같은 사람
믿음의 사람들이 이 책의 좋은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담아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이 좋은 사람들을 향해 냉소할지라도 아랑곳하지 않는 담대함을 우리는 갖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온기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면 참 좋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말씀도 좋은 사람에 대해 들려줍니다. 성경의 언어로 이런 사람을 가리켜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을 무언가 많은 것을 받은 사람, 차고 넘치는 선물을 받은 사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사로잡힌 사람은 그 사랑이 흘러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흘러나오는 사람을 우리는 좋은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과 예레미야서 말씀에 복 있는 사람, 곧 좋은 사람이 누구인지 들려줍니다. 먼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편 말씀을 보겠습니다. 

시인은 복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대비하는데요. 복 있는 사람을 이렇게 두 부분으로 묘사합니다. 첫째는 악인의 꾀를 멀리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리에 서지 않는 사람이며 주님의 율법, 그러니까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리는 일을 멈추지 않는 사람을 복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두 번째로 시인은 복 있는 사람을 가리켜,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는 사람이라고 노래합니다. 요약하면 복 있는 사람, 곧 좋은 사람은 악인의 방식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방식을 따르는 나무 같은 사람입니다.

시인이 복 있는 좋은 사람을 나무에 비유한 것은 단지 시적 감수성을 자극하기 위한 선택이 아닙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반려 식물을 기르는 분들은 아실 겁니다. 나무나 꽃과 같은 식물은 결코 악인의 방식으로 자라날 수 없습니다. 더 빨리 그리기 위해 과도한 수분이나 비료는 식물을 죽게 만듭니다. 식물은 제아무리 값비싼 흙이나 최고급 화분에 심겼다고 해서 더 빨리 자라거나 더 풍성해지지 않습니다. 식물은 적당한 물과 빛, 깨끗한 토양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자라날 수 있습니다. 물과 빛, 바람과 흙은 모두 창조의 섭리를 담고 있는 자연의 근본입니다. 나무는 바로 여기에 잇닿아 있어야만 자라날 수 있습니다. 시인은 나무를 보며 하나님의 섭리에 접속된 사람이 참으로 좋은 사람, 복 있는 사람임을 간파한 것입니다.

예레미야 예언자가 본 좋은 사람의 모습도 이와 비슷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본 예레미야서 17장 8절 말씀입니다. 

8   그는 물가에 심은 나무와 같아서 뿌리를 개울가로 뻗으니, 잎이 언제나 푸르므로, 무더위가 닥쳐와도 걱정이 없고, 가뭄이 심해도, 걱정이 없다. 그 나무는 언제나 열매를 맺는다.

예언자 예레미야도 시편의 시인과 같은 심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접속된 좋은 사람은 물가에 심은 나무 같은 사람이며 뿌리가 깊고 잎이 언제나 푸른 사람, 무더위와 가뭄이 심해도 끄떡없는 사람, 그리고 열매를 언제라도 많이 맺는 사람입니다.

시인과 예언자가 나무 같은 사람을 복된 좋은 사람으로 여기는 이유가 더 있습니다. 유대 땅을 삶의 자리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은 생각해 봅시다. 이들의 땅은 척박하고 메마른 땅입니다. 주로 사막 기후의 건조한 지역을 기반으로 이들은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유대의 사람들에게 물과 나무는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생명을 경험합니다. 유대의 시인과 예언자들은 복 있는 좋은 사람을 보며 물가의 심은 나무와 같은 사람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건조한 바람이 불어 온몸에 모래가 가득하고, 입안은 텁텁하고, 갈증에 목이 탈 때 물가의 나무는 보는 것만으로 상쾌함과 청량함을 줍니다. 이들이 복 있는 좋은 사람을 나무와 같은 사람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게다가 물가에 심은 나무는 작렬하는 태양을 잠시간 피해줄 수 있는 그늘을 만들어 냅니다. 쉴만한 물가는 목을 축일 수 있는 물을 제공하고, 또 좋은 나무는 허기를 달랠 수 있는 열매를 제공합니다. 그러니 좋은 사람은 누군가를 먹이고 살리는 사람입니다. 쉴 그늘이 되어주는 사람입니다.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생각해 보면 참 단순합니다.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대단히 영적인 사람, 신비한 능력이 가득한 사람인 것 같지만, 시인과 예언자는 하나같이 말하길 나무 같은 사람을 복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평지에 서신 주님
이제 복음서 말씀을 보며 우리의 복 있는 좋은 사람 도감을 완성해 봅시다. 지난주 우리는 제자들을 불러 모으신 주님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과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시며 여러 기적을 베푸셨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더불어 바리새인들과 논쟁도 벌이며 환호와 비난을 한 몸에 받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본문도 산 위에서 말씀을 마치시고 내려오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누가는 이 장면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17절입니다.

17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셔서, 평지에 서셨다. 거기에 그의 제자들이 큰 무리를 이루고, 또 온 유대와 예루살렘과 두로 및 시돈 해안 지방에서 모여든 많은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었다.

누가는 주님이 산에서 내려와 평지에 서셨고, 그러자 정말 많은 무리가 주님께 모여들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주님은 '평지' 그러니까 평평하고 낮은 땅에 서셨습니다. 평지라는 헬라어 말은 '토푸 페디노우(τόπου πεδινοῦ)'라고 하는데, 앞에 토푸가 '땅의'라는 뜻이고 뒤에 페디노우라는 말이 평평하다라는 형용사입니다. 이 평평한 이라는 형용사는 성경에 딱 한 번 여기에 쓰입니다. 의도적인 강조의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주님은 왜 산에서 내려와 평평한 땅에 섰을까요? 바로 다음 구절들을 봅시다. 18, 19절입니다.

18   그들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또 자기들의 병도 고치고자 하여 몰려온 사람들이다. 악한 귀신에게 고통을 당하던 사람들은 고침을 받았다.
19   온 무리가 예수에게 손이라도 대보려고 애를 썼다. 예수에게서 능력이 나와서 그들을 모두 낫게 하였기 때문이다.

주님 앞에 모인 많은 무리의 정체가 나타납니다. 누구입니까? 하나같이 병든 사람, 약한 사람, 귀신 들려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모두 힘겨운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병들고 아픈 사람은 산에 오를 수 없습니다. 주님이 산에서 내려와 평지에 서신 이유입니다. 주님이 높은 산 위에만 머물러 계시며 말씀을 전하고 기적을 베푸셨다면, 산 위로 올라갈 수 없는 힘들고 약한 사람들, 병들어 걷지 못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었을 것이며, 주님의 옷깃마저 만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산 위에 계셨던 주님은 아셨습니다. 아, 저 사람들은 이곳 산 위로 올라오지 못하는구나, 그렇다면 내가 내려가야겠다고 말이지요. 주님이 산에서 내려온 이유입니다. 그리고 높지 않은 평평한 곳에 서신 이유입니다. 주님이 평지에 계셨기 때문에 이제야 사람들이 주님께 나아올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산에서 내려오길 선택하신 주님은 참으로 좋은 사람, 복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의 메마른 마음에 생기를 주시는 나무 같은 분이십니다. 


복 있습니다! 여러분!
이윽고 주님은 평지에 모인 힘들고 지친 이들에게 복의 말씀을 전하십니다. 힘에 겨워 산에 오를 수 없었던 사람들, 조리 있게 요구하고 요청할 수 있는 말조차 할 수 없어서 그저 주님의 옷깃만이라도 잡길 바랐던 힘없는 자들을 향해 주님은 복을 선포하시면 말씀하십니다. 새한글 성경으로 들어보시기를 바랍니다.

20   "복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가 여러분 나라이니까요.
21    복 있습니다,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은! 여러분이 배부르게 될 테니까요. 복 있습니다, 지금 우는 사람들은! 여러분이 웃게 될 테니까요.
22    복 있습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을 미워할 때, 여러분을 따돌릴 때, 비방할 때, 여러분의 이름을 악하다고 내칠 때는요! 인자 때문에 말입니다!
23    바로 그날에는 기뻐하며 춤추세요. 보세요, 하늘에서 여러분의 보상이 크니까요. 그들의 조상들이 예언자들에게 똑같이 해 왔거든요.

산에 오를 수 없는 아무것도 아닌 자기들 같은 이들에게 주님은 산에서 내려와 오히려 그들을 축복하며 복이 있다고 선언하십니다. 여기 있는 산에 오르지 못하는 이들의 심정이 어떠할까요? 늘 무시당하며 살아온 이들, 스스로 산에 오를 힘조차 없느냐고 힐난당한 이들, 가난한 이유는 네 탓이라고 손가락질당하며 살아온 이들, 아프고 힘이 없기 춤이라고는 한 번도 춰 본 적 없던 이들입니다.

단 한 번도 자기 삶을 향해 복이 있다는 말을 들어 본 적 없는 사람들, 자기 스스로에게조차 너는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가난하고, 늘 굶주려있고, 시시때때로 울고, 언제나 따돌림당하는 데 익숙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나는 좋은 사람 일리가 없어'라는 슬픈 자의식을 몸에 두르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나에게 복이 있다고, 너는 사실 좋은 사람이라고, 너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담겨있다고, 무엇보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주님이 다정하고 따스한 음성으로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 안에 생명이 돋아나기 시작합니다. 메마른 삶의 구석구석에 신선하고 맑은 물이 공급되기 시작합니다. 죽은 나뭇가지 같았던 이들의 삶의 줄기에 생기가 돌고 푸른 잎이 돋아나기 시작합니다. 이윽고 열매까지 맺어지게 되겠지요. 무릎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마음에 흥과 웃음이 차오릅니다. 춤이 추고 싶어집니다. 이제 서로를 바라보며 얼싸안고 기쁨의 춤을 춥니다. 산 아래 평지는 좋으신 분인 주님과 마찬가지로 좋은 사람들이라고 칭함 받은 사람들의 축제의 장이 됩니다. 

기쁨으로 충만한 이곳은 하나님 나라의 한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이 축제의 장에서 더는 가난한 사람도, 우는 사람도, 배고픈 사람도, 따돌림당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갑자기 부유해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들이었기에 상대방의 가난을 이해하고, 배고파 보았기 때문에 누군가의 주린 배를 놔둘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서로 나누어 먹고 자기 것을 주고 약하고 힘든 사람들이 서로의 약함을 응원하는 자리가 되었기에 이 안에 거한 사람들은 모두 복이 있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함께 춤추길 기뻐하는 청파의 청년 여러분, 주님은 산 위로 올라올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 산 아래로 내려오셨습니다. 주님이 산 아래 평지로 오시는 모두가 기쁨의 잔치를 벌일 수 있었습니다. 그 자리 안에 저와 여러분들도 있습니다. 주님이 아무것도 아닌 우리를 향해 너희들은 복이 있다, 좋은 사람들이다! 그러니 슬퍼하지 말고, 나와 기뻐하자고 말씀하십니다. 이 기쁨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이 기쁨을 나눠줍시다. 우리의 삶은 여전히 힘들고, 고단하지만, 주님은 우리를 향해 좋은 사람이라 말씀해 주셨으니 우리 안에 있는 작은 좋음들을 드러내며 나눠주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