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를 마치며
오늘은 교회 절기로 왕국 주일입니다. 왕국 주일의 뜻과 의미는 말 그대로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왕이심을 선포하는 주일입니다. 시기 적으로 왕국 주일은 대림절이 시작되기 직전 주일에 지킵니다. 또한 왕국 주일을 맞았음은 올해 교회력의 모든 절기가 끝났다는 의미입니다. 전례적 관점으로 보자면 왕국 주일은 교회력으로서 송구영신입니다. 여러분은 2024년을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그리고 여러분의 예배는, 신앙은, 그리고 기도는 어떠하셨는지요? 부디 바라기는 우리의 이 작은 공동체가 여러분의 신앙을 조금 더 성숙시키고 신앙의 마음 품이 조금 더 넓어지는 데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우리 청파교회 청년부는 올해에 들어서며 교회력을 지키며 예배드렸습니다. 우리가 함께 나눈 말씀은 복음서를 따라가는 주님의 행적이었는데요.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 행동, 눈빛, 손짓을 살폈습니다. 주님은 갈릴리 유대 땅 이곳저곳을 쉼 없이 다니셨습니다. 주님은 멈춰계시기보다는 늘 움직이시는 분이셨습니다. 주님은 걷기도 하셨고 배를 타기도 하셨습니다. 우리는 말씀과 동행하며 주께서 걸어가실 때 주님과 함께 걸었고, 배를 타셨을 때는 우리도 주님과 배를 함께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넜습니다. 고향에서 배척받으셨을 때 우리는 주님을 따라 쫓기듯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몇 주간 우리는 성전에 들어가신 주님에 대해 성찰했습니다. 유대의 민족적 자존심이자 신앙의 요체였던 성전에 들어가셨을 때 사람들은 예수께서 과연 무슨 일을 하시고 어떤 말씀을 하실지 주목했습니다. 성전의 새로운 주인이 바로 나, 예수임을 선포하실지, 혹은 성전에서 새로운 유대교의 교리나 하나님의 뜻을 설파하실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성전에 모인 사람들도, 성전의 당국 관리자들도, 율법 학자들도, 바리새 사람들도 모두 주님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행동과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성전에 들어서자마자 성전의 일상을 지탱하고 있던 환전상들, 재물 파는 상인들의 좌판을 뒤엎으시고 내 아버지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드셨다고 외치셨습니다. 누구도 주님 앞에 반박할 수 없었습니다. 그 말씀이 맞았기 때문입니다.
거룩의 상징이 되어야 할 성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사람을 살려야 할 율법이 오히려 사람을 옭아매는 악법이 돼서 가난한 이들을 괴롭혔습니다. 주님은 성전의 제사와 율법, 유대 민족이라는 혈통적 자부심이 단절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회복할 수 없음을 아셨습니다. 빛을 잃어버렸음에도 화려한 몸짓을 뽐내고 있던 성전이나 따듯함을 잃어버린 율법이 아니라 십자가, 당신께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야 인류를 포함한 창조 세계 전체가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음을 주님은 아셨습니다. 그것도 홀로만 아셨습니다.
당신이 왕이오?
홀로 아셨다는 말은 바꾸어 말해 예수님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 가운데 누구도 이 땅에 주님께서 오신 이유를 온전히 알지 못했다는 뜻과 같습니다. 우리가 자주 이야기 나눴지만, 제자들은 주님에 대하여 많은 부분 오해하고 그릇 이해했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뜻을 어렴풋하게나마 깨닫게 된 시점은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난 후였으며, 승천하신 후 오순절날 성령을 받고 나서야 주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와 의도, 계획을 온전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은총을 경험하고 나서야 제자들은 주님께서 참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닫고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비로소 제자들은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제자들과 동행하시던 시기의 주님은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한솥밥 먹는 제자들마저 주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니 말입니다.
사도가 되기 전 제자들은 주님을 통해 새로운 세상에서 지금까지 누리지 못해본 권력을 갖는 꿈을 꾸었습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이 기다리고 있는 나라가 어떤 모습인지, 어떤 의미인지 몰랐습니다. 비단 제자들만이 아닙니다. 유대의 많은 사람들이 마찬가지로 주님을 오해하고 왜곡하여 받아들였습니다. 주님이 우리들의 배고픔을 달래주고 빵을 나눠주는 분이 되어주길 바라기도 했습니다. 로마로부터 억압받는 자신들을 살려내고 정치적 해방을 맞이하게 할 유력한 정치 지도자가 되어주길 바라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주님의 반대자들도 주님을 왜곡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성전의 권력자들은 주님이 자기들의 종교 권력을 찬탈하러 나온 자라고 믿었습니다. 율법 학자로 세간의 칭송을 한 몸에 받고 있던 이들도 예수가 자기들의 경전 해석과 율법 해석을 반대하여 그 명성을 홀로 가로채려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들 역시 주님을 곡해했습니다. 주님을 종교 권력자로, 율법 해석의 독점적 권위자로 믿어 버렸으니 말입니다.
제자들, 유대의 평범한 사람들, 바리새인들, 율법 학자들, 성전의 권력자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예수를 옥생각했습니다. 이 모든 오해를 요약하여 한 마디로 만들자면,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상의 왕으로 옹립하려 했다' 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꿈꾸는 세상은 하나님 나라가 아닙니다. 이들이 세우고 싶던 세상은 자신들의 욕망이 투사된 왕국, 자신들이 바라는 바가 성취는 세상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이런 세상의 왕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의 복음서에서 총독의 재판정으로 끌려 나온 예수를 향해 던진 빌라도의 첫 번째 질문이 바로 여기에 해당합니다. 빌라도가 잡혀 온 예수께 이렇게 묻습니다.
33 빌라도가 다시 관저 안으로 들어가, 예수를 불러내서 물었다. "당신이 유대 사람들의 왕이오?"
빌라도가 예수를 향한 심문의 첫 질문으로 "당신이 유대 사람들의 왕이오?"라는 문장을 눈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그의 물음을 풀면 이렇습니다.
'유대 사람들이 당신을 두고 옥신각신 다투고 있소. 어떤 사람은 새로운 종교의 주창자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로마 제국에서 당신들 민족을 해방할 새로운 황제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유대교의 최고 지도자가 될 거라고 말하고 있소. 내가 도대체 누구 말을 들어야 하오? 당신은 도대체 어떤 종류의 왕이오?'
빌라도의 질문에는 혼란이 담겨있습니다. 한 유대 사람이 같은 유대 사람들에 의해 고발되어 재판장에 섰는데, 그를 두고 온갖 말들이 교차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예수를 저마다 자기들의 왕으로 여기고 있는데, 도대체 어느 나라의 어떤 왕인지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이 유대 사람들의 왕이냐는 말에 주님은 답하지 않습니다. 이는 묵비권이 아닙니다. 또는 유대 사람들의 왕이냐는 질문의 의도와 의미를 모르셨기에 대답하지 않음도 아닙니다. 그 질문 자체가 틀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되묻습니다. 34절입니다.
34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당신이 하는 그 말은 당신의 생각에서 나온 말이오? 그렇지 않으면, 나에 관하여 다른 사람들이 말하여 준 것이오?"
주님은 빌라도를 향해 당신도 다른 유대 사람들과 똑같이 나를 저들이 말하는 세상의 왕이냐고 되묻습니다. 빌라도는 이 물음에 즉각 불쾌감을 드러내며 반문합니다. 35절 말씀을 조금 풀어 말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유대사람이란 말이오? 내가 당신들 민족의 속사정을 알아야 한단 말이오? 당신들이 치고 받고 서로 왕이네 마네 하며 당신을 잡아온 이들은 바로 당신들 민족 사람들이이오.'
그리고 빌라도는 묻습니다. '좋소, 당신이 왕인지 아닌지 대답하지 않겠다면, 이렇게 묻겠소. 도대체 당신은 무슨 일을 하였소?'
빌라도의 이 질문, 당신이 여기 모인 사람들이 말하는 왕국의 왕이 아니라면, 도대체 예수라는 자는 무슨 일을 한 사람인가? 이 물음은 복음서가 우리에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는 핵심 물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빌라도의 입을 통해 복음서가 우리에게 던지는 이 질문을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가 바라고 욕망하는 세상의 왕이 되어 주시길 원하지만, 주님은 말씀하시길, 나는 그런 세상의 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이 질문은 우리가 신앙인으로 살아가며, 주님의 부름을 받는 날까지 답해야 할 필생의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지난 이천 년간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던진 질문이었으며, 앞으로도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그리고 모든 교회에 던질 질문입니다. '예수가 누구이며 무슨 일을 하였는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세상의 왕
여러분, 우리는 이 질문을 듣고 답하기 위해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우리가 주일마다 모여 예배드리는 이유는 바로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함입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그어떤 미사여구나 형용사를 사용하지 않고 직설법으로 묻습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생각하라. 예수가 무슨 일을 하였는지!
여러분, 우리 주님이 무슨 일을 하셨던가요? 지난 일 년 복음서 말씀을 떠올려 보십시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든가요? 예수님은 무슨 일을 하셨던 분인가요? 여러분 마음속으로 한 번 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난 한 해동안 살폈던 말씀을 떠올려 봅시다. 복음서에서 주님은 아픈 사람을 돌아보고, 손가락질 당하는 사람들 앞에 서주시고, 힘없는 사람들의 편이 되어 주셨습니다. 인간성을 메마르게 하는 사람들에 대해선 매섭게 비판하셨고, 기적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적이 되어주셨습니다.
어느 날엔 주님은 당신을 가리켜 농부라고 하셨고, 어느 날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겠다고 가슴 벅찬 말씀을 하셨는가 하면, 어느 날은 내가 너희를 영원히 떠나가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제자들을 무섭게 만들기도 하셨습니다. 어둡고 음습한 마음을 품고 있는 이들을 향해 역정을 내시며 일갈하는 모습도 보았고, 사랑하는 제자들이 엉뚱한 말을 할 때 안타까워하시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이들 앞에서는 한없이 너그럽고 품이 넓으셨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안아서 무릎에 앉히고 말씀하시길 좋아하시는 주님도 보았습니다. 약하고 힘없는 자, 고개를 들 수 없어 땅을 바라보고 사는 자, 세상의 손가락질 받고 수군거림 당하는 이들을 향해 다가가시고 그들의 손을 잡으시고 함께 울어주시는 주님을 보았습니다.
우리 주님은 온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지라도 너희는 세상과 같은 사람이 되지 말고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보듬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 온 힘을 다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미워하기보다 사랑하기를, 나누고 가르기보다는 품어주고 안아주라고 말씀도 들었습니다. 길거리에 쓰러진 사람을 향해 지체 없이 달려가시는 모습을 보며 한 걸음도 떼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우리 자신을 보며 반성했습니다. 주님은 이런 분이셨습니다.
예수께서 하신 일을 돌이켜보니 어떠신지요? 물론 여전히 예수께서 어떤 분이신지 한 두 문장으로 명쾌하게 요약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 모인 우리가 모두 한 가지 동의할 수 있는 바가 있습니다. 주님은 세상이 바라고 원하는 세상의 왕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주님께서 하신 일, 하실 말씀은 모두 세상의 법칙과 반대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세상 욕망이라는 피라미드에 마지막 꼭지점이 아닙니다.
주님은 언제나 세상이 껄끄러워하는 쪽에 서 계십니다. 일하다 다친 사람들 편에, 자기 신념을 지키다 직장을 잃어버린 사람들 편에, 난민이 되어 국경선 바깥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이들 편에, 합당한 대우와 처우를 받지 못하는 이주 노동자들 편에, 삶의 의미를 모두 잃어버린 사람 편에 서 계십니다. 세상은 주님께 거기 계시지 말고 여기 오시라고 손짓합니다. 여기 오셔서 우리 왕이 되어 달라고 외칩니다. 그러나 주님은 단호히 고개를 저으시며 말씀하십니다. 36절입니다.
36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오. 나의 나라가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나의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오. 그러나 사실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오."
주님의 나라는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원하는 원리로 작동되는 세계가 아니라는 뜻이겠지요. 주님의 나라는 세상과 반대로 작동합니다. 세상이 능력주의를 따른다면 주님의 나라는 제일 뒤처진 자에게도 기회를 주고 손뼉을 쳐주는 세상입니다. 모멸과 혐오를 당연하게 여기고 이죽거리며 사람을 차별하는 세상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 환대하며 서로가 서로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여기는 세상, 주님은 그런 세상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청파의 청년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왕으로 믿고 왕으로 섬긴다면, 우리는 욕망의 세상을 떠나 주님이 왕이신 왕국으로 가야 합니다. 나의 욕심으로 주님을 끌어당겨 왕으로 세우려는 세상에서 우리는 과감히 뛰쳐 나아와 주님 계신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곳엔 언제나 세상이 꺼리는 사람, 세상이 눈여겨보지 않는 사람, 세상의 원리와 반대로 걷는 사람들이 계신 곳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그들 편에 서 계십니다. 우리도 그곳으로 가야 합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지나치게 염세적인 것 아니냐고, 마치 세상을 빛과 어둠으로 나누는 것 아니냐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주님의 말씀이 답이 됩니다.
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말에 빌라도는 다시 묻습니다. 당신은 왕이냐고. 주님이 빌라도에게 비로소 답합니다. 37절입니다.
37 빌라도가 예수께 물었다. "그러면 당신은 왕이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당신이 말한 대로 나는 왕이오. 나는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세상에 왔소.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가 하는 말을 듣소."
주님은 당신의 나라와 세상 사이에 경계를 세우고자 하심이 아닙니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주님의 말을 듣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진리에 귀를 기울이는 자는 누구나 그 왕국의 시민입니다. 욕망의 땅 한 복판에 서 있다 할지라도, 진리 곧 우리 주님의 음성에 응답하면 그는 주님이 왕으로 계신 나라의 시민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몫이 있습니다. 욕망의 세상에는 진리가 없음을 우리는 우리 삶을 통해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사랑함으로 주님의 왕국에 서서 희망의 빛이 되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어둠에 짓눌린 사람들에게 다른 세상이 있다고! 그 세상엔 가장 약한 사람들의 편이 되어주신 주님이 왕이시라고 우리는 삶을, 말로, 행동으로 증거해야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주님 편에 섭시다. 주님이 왕이신 세상으로 갑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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